[창간특집| 주간경향 20년]「뉴스메이커」에서 「주간경향」까지 기사의 추억 (2024)

창간호에 당시 이명박 의원 회ê³ë‹´â€¦ 문대성은 올림픽 금메달로 표지 장식

1992년 6월 경향ì‹ë¬¸ì‚¬ì˜ 시사주간지 <뉴스메이커>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. 당시 민주자ìœë‹¹ì˜ 대표최ê³ìœ„원이었던 김영삼 ì„ ëŒ€í†µë¹ì´ <뉴스메이커>의 창간호 표지를 장식했다. 이어 발행된 2호와 3호에서도 그해 대ì„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김대중 ì„ ëŒ€í†µë¹ê³¼ ì•ì£¼ì˜ ì„ í˜„ëŒ€ê·¸ë£¹ 명예회장의 얼굴을 표지에 실었다.

1호 표지 김영삼, 2호 김대중, 3호 ì•ì£¼ì˜
<뉴스메이커>는 16년 동안 이름에 걸맞게 인물 중심의 시사주간지로 자리매김해 오다 2008년 9월 경향ì‹ë¬¸ì˜ 시사주간지라는 ì•ì²´ì„±ì„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「Weekly경향」으로 ìœí˜¸ë¥¼ 바꿨다. 2011년 ì‹ë…„호부터는 <주간경향>으로 이름을 바꾸며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ìžë¦¬ë§¤ê¹€í•˜ê³ ìžˆë‹¤.

20년의 세월에 걸맞게 <주간경향>의 지난 역사에 숨어 있는 추억거리들도 많다. 창간 준비단계에서 발행한 ‘시작지’라는 형태의 시험판을 거친 뒤 나온 ì°½ê°„í˜¸ì—ì„ ì´ëª…ë°• 대통ë¹(당시 민주자ìœë‹¹ 의원)의 글을 ë°œê²¬í• ìˆ˜ 있다.

[창간특집| 주간경향 20년]「뉴스메이커」에서 「주간경향」까지 기사의 추억 (1)

이명박 대통ë¹ì€ 창간호부터 6회에 걸쳐 자ì‹ì˜ 인생과 ì•ê³„ 진출에 관한 내용의 원ê³ë¥¼ 기ê³í–ˆë‹¤.

‘실록 야망의 세월’이란 ìœëª©ì„ 단 그의 글에는 현대그룹 재직 중 있었던 비화와 그의 ì•ì¹˜ì 야망이 무엇인지가 담겨 있다. 당시 민주자ìœë‹¹ì˜ 14대 ì„국구 국회의원이었던 이 대통ë¹ì€ 자ì‹ì˜ 이야기를 현대건설을 나온 뒤 본격ììœ¼ë¡œ ì•ì¹˜í™œë™ì„ ì‹œìž‘í• ë¬´ëµì˜ 상황부터 풀기 시작했다. 내용은 자연스럽게 이 대통ë¹ê³¼ ê³ ì•ì£¼ì˜ 회장 사이의 관계로 이어졌다. 이 대통ë¹ì€ 글에서 ‘ì•ê³„ 진출이 집권여당이 ì• íšŒìž¥ì„ 견ìœí•˜ê¸° 위한 의도로 시작된 것이 아닌가’, ‘현대를 ë–ë‚œ 것은 ì• íšŒìž¥ê³¼ì˜ 관계가 틀어졌기 때문 아닌가’와 같은 자ì‹ì„ 둘러싼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.

창간 초기 이 대통ë¹ì˜ 회ê³ë‹´ì€ 이후 발행된 ìžì„œì„ <ì‹í™”는 없다>의 밑바탕이 됐다. 당시 이 대통ë¹ì˜ 글을 싣기로 기획했던 ì•ì„ì„­ 기자(현 재벌닷컴 대표)는 “이 대통ë¹ì´ 끝끝내 ê³ì‚¬í•˜ë˜ 것을 구체ìì¸ 기획 방향을 미리 ì•í•˜ê³ 끈질기게 달라붙ê³ì„œì•¼ 겨우 (이 대통ë¹ì˜) 동의를 얻어냈다”면서 “창간도 하기 ì„인 매체였지만 현대그룹에 출입하면서 쌓은 인연으로 기획을 성사시켰는데, 당시가 대ì„을 앞둔 ì• íšŒìž¥ì´ ì•ë¥ììœ¼ë¡œ ìœì„¸ì— 나서던 시기라 파장이 더욱 컸다”며 그때를 회상했다.

김어준, 14년 ì„ 303호 표지에 실ë¤
이 대통ë¹ì€ 이후 1995년 지방ì„ê±° ê³¼ì•ì—ì„œ ì•ì›ì‹ ì„ êµ­ë¬´ì´ë¦¬ì™€ì˜ 서울시장 후보 ê²½ì„을 이끌어내는 모습으로 처음 표지에 실리기도 했다. 이 대통ë¹ì€ 당시 김영삼 대통ë¹ìœ¼ë¡œë¶€í„° ê²½ì„ ê²°ì•ì„ 이끌어낸 데 대해 인터뷰에서 “대통ë¹ì˜ ê³ì§‘이 센지, 내 ê³ì§‘이 센지 붙어볼 ì…ˆì´ì—ˆë‹¤â€ê³ ë§í•´ 자ì‹ë§Œë§Œí•œ 태도를 보였다. 이 대통ë¹ì€ 1995년의 서울시장 ì„ê±° 도ì„에는 ì‹¤íŒ¨í•˜ê³ ì„œìš¸ì‹œìž¥ì— 당ì„된 2002년 이후 다시 표지인물로 등장한다. 이ì„과는 달리 서울시장과 대통ë¹ì´ 된 후 표지에 등장한 이 대통ë¹ì€ 대부분 ‘불도ì€ì‹ 행ì•â€™ê³¼ ‘불통’의 아이콘으로 비판받는 입장에 서 있다.

이 대통ë¹ì˜ 임기 내내 ‘친이계’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던 이재오 의원이 1993년 재야생활을 ë§ˆì¹˜ê³ ê¹€ì˜ì‚¼ ì•ë¶€ì— 참여하던 모습도 눈에 띈다. 1993년 5월에 발행된 23호에는 “ì•ê°€í™”ìœ 재야핵심 첫 ‘ì‹í•œêµ­ 노크’ 이재오”라는 ìœëª©ì˜ 기사가 ì‹¤ë¤ ìžˆë‹¤. 당시 이 의원은 “현 시대는 민주화와 통일로 가기 위해 구시대의 ì•ë¦¬ìž‘업을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재야도 자기도 모르게 체화된 ì•ë¶€ì™€ 권ë¥ì—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”며 자ì‹ì˜ 입지를 바꿀 것임을 우회ììœ¼ë¡œ 표명했다. 재야 운동권의 ‘변ìˆâ€™ì´ë¼ëŠ” 비판을 뒤로 한 이 의원은 1996년 ì‹í•œêµ­ë‹¹ 소속으로 15대 국회의원에 당ì„됐다.

올해 19대 총ì„에서 당ì„되면서 5ì„을 달성한 이 의원은 <주간경향>으로 ìœí˜¸ë¥¼ 바꾼 첫 호인 907호의 표지인물로도 등장했다. 인터뷰 장소로 동네 분식집을 ì„택한 것이 이채롭다. 이 의원은 당시 차기 대권에 ëŒ€í•´ì„ â€œê·¸ëŸ° 데 너무 연연하지 않는다. 중요한 ê±´ 2년 동안 이 ì•ë¶€ê°€ 성공하는 것”이라는 태도를 보였다.

[창간특집| 주간경향 20년]「뉴스메이커」에서 「주간경향」까지 기사의 추억 (2)

김어준 총수가 1998년 본지와 인터뷰하는 모습.(왼쪽) 2004년 본지 591호에 실린 당시 문대성 ì„수의 사진.(오른쪽)

작년과 올해 가장 큰 ‘뉴스 메이커’ 중 한 명이었던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14년 ì„ ëª¨ìŠµë„ 흥미롭다. ‘딴지일보 총수’라는 직함, ê·¸ë¦¬ê³ ê¸¸ê²Œ 기른 머리와 수염은 14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. 하지만 1998년 12월에 발행된 303호 표지에 실린 김 총수의 얼굴엔 현재와는 다른 앳된 티가 묻어난다. “‘비주류 인ì•â€™ 외치는 패러디 황ìœâ€ë¼ëŠ” ê¸°ì‚¬ì—ì„ ì¸í„°ë„· 초창기 잘 나가던 딴지일보의 모습도 찾을 수 있다. 취재와 편집, 교열과 ë¯¸ìˆ ëª¨ë‘ë¥¼ 김 총수가 혼자 맡아 하던 딴지일보가 20명의 무보수 기자를 뽑는 데 1000명 이상이 ì§€ì›í• ì•ë„였다. 김 총수는 당시 인터뷰에서 “경건주의와 엄숙주의로 뒤덮인 이 사회에서 뭔가 역í•ì„ í•˜ê³ ì‹¶ì—ˆë‹¤â€ê³ ë°í˜”ë‹¤. “비주류 중심의 황색 ì€ë„ë¦¬ì¦˜â€ì´ëž€ 딴지일보의 방향은 ‘나는 꼼수다’에까지 일관되게 ìœì§€ë˜ëŠ” 것으로 보인다.

13년 만인 2011년 10월 944호 표지인물이 된 김 총수는 “딴지일보나 나꼼수는 풍자의 언어ê³, 풍자나 패러디는 기본ììœ¼ë¡œ 약자의 언어”라며 “딴지일보가 ìœí–‰í–ˆë˜ 시ìˆê³¼ 나꼼수가 ìœí–‰í•˜ëŠ” 시ìˆì˜ 공통ìì´ ìžˆë‹¤â€ê³ ë§í–ˆë‹¤. 그는 이때엔 ‘나꼼수’ 공동 진행자인 김용민씨의 ì´ì„ ì¶œë§ˆë¥¼ 예상하지 못한 듯 당시 ë¶ˆê³ ìžˆë˜ 안ì²ìˆ˜ 열풍과 ‘나꼼수’의 차이ìì´ “나꼼수가 출마하는 것은 ì•„ë‹ˆë‹ˆê¹Œâ€¦â€ë¼ê³ ëŒ€ë‹µí–ˆë‹¤.

êµ­ë¯¼ì ì˜ì›…ì—ì„œ 지탄의 대상으로 ì„락한 안타까운 사연의 인물도 있다. 2004년 9월 591호의 표지인물이었던 문대성 19대 국회의원 당ì„자다. 문 당ì„자는 그해 8월 아테네 올림픽 ë§ˆì§€ë§‰ë‚ ì—´ë¦° 태권도 헤비급 결승ì„에서 상대 ì„수를 그림 같은 뒤후ë¤ì°¨ê¸°ë¡œ ì“°ëŸ¬ëœ¨ë¦¬ê³ ê¸ˆë©”ë‹¬ì„ 목에 걸었다. 큰 키에 준수한 외모가 돋보이는 그의 표지 사진은 모델 이상의 수준이었다.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“살던 집이 계속 ì²ê±°ë¼ 셋방살이와 이사가 끊이지 않을 ì•ë„ë¡œ 가난한 어린 시ìˆì„ 보냈다. 도시락 싸가기도 어ë¤ìš´ 형편인데 ìì‹¬ 때마다 ì§ì‘ ë„ì‹œë½ì„ ë“¤ê³ ì°¾ì•„ì˜¤ì‹œë˜ 어머니 때문에 많이 울었다”면서 과거 힘들었던 시ìˆì„ ë–올ë¸ë‹¤.

문 당ì„자는 역경을 ì´ê¸°ê³ ìˆœíƒ„í•œ 삶을 이어가는 듯 보였다.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대학교수로 강단에 올랐던 그는 19대 ì´ì„ ë¶€ì‚° 사하 갑에서 국회의원에 당ì„됐다. 그러나 박사학위 논문을 표ìˆí•œ 사실 때문에 ‘문도리코’라는 치욕ìì¸ 별명까지 붙으며 ê²°êµ­ 새누리당을 탈당했다. 뒤후ë¤ì°¨ê¸° 한방으로 영웅ìì¸ 대ì‘을 받았던 그는 ê²°êµ­ 새누리당의 ìœëª… 논의 대상이 되면서 의원직을 ë†“ì¹ ìˆ˜ë„ 있는 위기를 ë§žê³ ìžˆë‹¤.

<김태훈 기자 anarq@kyunghyang.com>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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